2012년 4월 2일 월요일

원전과 화수분 (충남사설읽기워크북03)


경향신문 2011.03.25


무진장한 공급원을 가리키는 말이 화수분이다. 하수분(河水盆)이 어원이라 한다. 중국 진시황 때 황허(黃河)의 물을 채운 거대한 물동이가 있었는데 얼마나 컸던지 마르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중국에선 쭈바오펀’(聚寶盆, 보배를 늘리는 그릇), 영어권에선 성경에서 유래한 과부의 항아리’(widow’s cruse)란 말이 쓰인다. 요즘 말론 돈 찍어내는 기계’(money printing machine)쯤 된다. 석유시대 이후를 걱정하는 자칭 현실주의자들은 원자력발전을 에너지의 화수분이라고도 한다.

위기(危機)란 위험한 고비란 뜻이다. 한자를 뜯어 보면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잇닿아 있다. 그래서 위기가 곧 기회라고도 한다. 위기를 뜻하는 영어 ‘crisis’의 그리스어 어원은 ‘sift(체로 거른다)’. 본질을 취하고 쭉정이를 걸러낼 때란 의미다. 생태경제학의 토대를 닦은 크로퍼드 스탠리 홀링이 말하는 복원력’(resilience)이 그렇다. ‘보존-해방-재조직-개발의 순환 단계마다 위기가 닥치는데, 창조적 파괴가 이뤄지지 않으면 생태계는 복원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하리 레만 독일 환경청 지속가능전략국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원전이 원전업계의 화수분일 뿐이라고 했다. 원전은 인류의 화수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원전 사고 직후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의 목표는 2017년까지 무()원전이다. 소설이 아니다. 느닷없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독일은 전체 생산전력의 1%이던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5년 만에 17%로 늘렸다. 그 힘은 탈원전에 대한 80%의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 합의에서 나왔다고 레만 국장은 말한다. 원전은 화수분이란 환상에서 언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 원전 사고는 분명 위기다.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위험이 기회를 압도하는 반쪽의 위기라는 점이다. 내진설계는 괜찮은지, 편서풍이 변덕을 부리지나 않을지, 일본 명태가 동해로 헤엄쳐 오지나 않을지 불안만 가득하다. 그래서 독일의 탈원전은 남의 일로 치부된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자 탈원전 시동을 건 독일은 이번 일본의 위기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창조적 파괴의 기회를 포착했다. 일본 원전 위기는 우리에게 독일의 사례야말로 남의 일이 아님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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