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A는 나의 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처음 A를 사귀었을 때 호탕한 성격과 함께 장난끼가 많아서 서로 만나면 웃기 바빴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여태까지 '너 나 믿지?' 같은 말은 한번도 한 적 없다만 늘상 만나면 서로가 믿는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구 A가 내 걱정을 같이 고민해 줄 때에는 엄청난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 A의 도가 지나친 장난의 횟수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니까 덩달아 나도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 씁쓸한 경우가 많다. 왜인지 나 씁쓸한것만 생각해서 장난치는 A한테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갑자기 싸해질것같은 분위기를 감당 못할것같아서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도가 지나치는 장난을 받아주면 내가 A를 예전과 같이 살갑게 대하지를 못할것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와 A와의 관계가 멀어질것이고 그것은 더 감당 못할것같았다. 그래서 A에게 내 생각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매일같이 만나면 웃는 이야기밖에 안했던 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친구 A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고 핀잔아닌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A가 적잖이 당황함을 느끼고 있다는걸 난 알았다. 이후 서로 만나면 서먹한감이 없지않아 남아있다. 예전에 나의 흐지부지함의 심각함을 미리 깨달았다면, A에게 내 생각을 말했었더라면 지금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텐데… 서로에게 서운함만 각인시켜준 꼴이 되버렸다.
2012년 4월 5일 목요일
양세림 - 선
친구 A는 나의 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처음 A를 사귀었을 때 호탕한 성격과 함께 장난끼가 많아서 서로 만나면 웃기 바빴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여태까지 '너 나 믿지?' 같은 말은 한번도 한 적 없다만 늘상 만나면 서로가 믿는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구 A가 내 걱정을 같이 고민해 줄 때에는 엄청난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 A의 도가 지나친 장난의 횟수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니까 덩달아 나도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 씁쓸한 경우가 많다. 왜인지 나 씁쓸한것만 생각해서 장난치는 A한테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갑자기 싸해질것같은 분위기를 감당 못할것같아서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도가 지나치는 장난을 받아주면 내가 A를 예전과 같이 살갑게 대하지를 못할것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와 A와의 관계가 멀어질것이고 그것은 더 감당 못할것같았다. 그래서 A에게 내 생각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매일같이 만나면 웃는 이야기밖에 안했던 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친구 A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고 핀잔아닌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A가 적잖이 당황함을 느끼고 있다는걸 난 알았다. 이후 서로 만나면 서먹한감이 없지않아 남아있다. 예전에 나의 흐지부지함의 심각함을 미리 깨달았다면, A에게 내 생각을 말했었더라면 지금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텐데… 서로에게 서운함만 각인시켜준 꼴이 되버렸다.
김보영 - 인상
새해에 우리가 듣게 되는 여러 덕담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부자 되세요.’ 우리는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하고 더 잘 보내기 위해서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매년 듣게 되는 덕담 같지 않은 덕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웃어’라는 덕담이었다. 이 덕담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듣기 시작해 얼마 전 까지 꾸준하게 들어 온 것으로 다른 사람이 듣는 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 갈만한 말이지만 그 말을 매년 듣는 나로서는 고민이자 콤플렉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매년 그 말을 듣는 까닭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웃지 않고 무표정으로 있을 때면 화가나 보이거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보이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그 덕담은 ‘너는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니 웃고라도 있으렴.’ 이라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인상 때문에 내가 받는 피해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 학년이 되어 친구를 사귈 때조차도 인상 때문에 친구들 눈에는 내가 불량한 학생으로 보이거나 얼굴에 짜증만 가득한 아이로 보여 친구들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고 내 인상만 보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친해진 친구들에게서 처음에 나를 안 좋은 아이로 봤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말을 매년 듣게 된 나는 누군가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보기만 해도 ‘나를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피해 의식까지 생기고 말았다. 결국 나는 억지로라도 웃으려 애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나의 인상 콤플렉스는 지워지지 않고 이따금 수면에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국어시간에 나는 지난날의 그 고민들이 어린 나의 머리에서 나온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머라고 떠들던 나는 나고 내가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라고, 껍데기 보다는 속 안의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국어 시간에 배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구가 왜 오늘따라 ‘겉모습은 집어치워, 네 속이 중요한 거야.’ 라고 들렸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방소연 - 거룩한 욕심
요즘 무척 피곤하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온 지 1주일 까지는 쌩쌩했다. 그다음 1주일도 나름 잘 보내왔다. 감기에 걸린 것 빼고는, 4주부터인가.... 아니, 셋째 주 토요일 이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육체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쌓이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짐을 싸고는 무척 기대에 찬 모습으로 기숙사를 나왔다. 왜 그렇게 기대에 찼냐면 셋째 주 토요일은 내가 교회 청소년부 예배 때 메인 반주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청소년부에 올라온 3년 전부터 계속 세컨 반주만 했었다. 물론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억울한 것도 맞다.
그렇기 때문에 위 선배가 졸업하고 바로 위 선배와 나만 남은 이 1년을 난 무척 기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개월간 나는 단 한번도 메인을 해 본적이 없다. 왜일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결코 언니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자만이다. 자신감이기도 하다. 실제로 실력은 별 차이 없기도 했고, 이론에 있어서는 언니들보다 내가 더 아는게 많았다. 어릴 적 부터 꿈이기도 했기에,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다. 참고 내 차례를 기다려왔다.
드디어 두려움반 기대반 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청년부와의 연합예배. 처음 반주하는 나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배가 메인을 하고 난 세컨을 하게 되었다. 예배 드리는 내내 ‘지친다...’라고,
어쩌면 별일 아닌 일이겠지만 그 후 내 마음속에 아쉬움과 억울함이 가득 남게 되었다. 일요일, 어제 일은 잊자.라고 생각하며 예배를 드렸다. 1시간이 흘러가고, 찬양대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왜 그리 맘에 안드는지, 전도사님은 박자를 못 맞추시고 선배는 알아채리지도 못하고, 전도사님 질문에 답했다가 친구들한테 핀잔받고, 어제 삭힌 마음 때문인지 꼬일 때로 꼬인 내 마음이었다. 있는대로 짜증 부릴 수 없어 참고 참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나와버렸다. 엄마와 준비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 차를 타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에게 억울함을 토해내기도 했다. 난 그때 엄마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너의 꼬인 심정은 나쁘지만, 그래도 그런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니 엄만 기쁘다.’ 거룩한 욕심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게 거룩한 욕심인가? 그저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는데? 그 뒤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어. 모두 포기하고 신앙을 포기할까라는...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니.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이 내 욕심보다 중요할 수 없는 걸. 지금은 엄마가 이렇게 교회에서 많이 쓰임 받고 사람들이 의지하고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니였어. 네가 어렸을 때 친했던 애 기억하지? 그 애 엄마랑도 친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더라.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주변사람들이 엄마를 모함하더라고... 물론 억울했지. 교회에서 무시받고 잘 상대해 주지 않았어. 그래도 난 내가 있는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나갔지. 떠나갈 사람들은 떠나가고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그치? 난 네 친구엄마가 이사 갈 때도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 나는 친구로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날 경쟁상대로 여긴 것 같더라. 그래서 그냥 덤덤하게 보내줬지.’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슬퍼졌다. 그리고 이런 엄마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분명 그 때 일은 나도 기억하고 있기에. 아마 친구가 나랑 놀지 못했을 때였을 것이다. 난 이 엄마의 경험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다시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런데 멀쩡했던 몸이 왜 그렇게 힘들게만 움직이는지, 일주일동안 그 생각만 하게 되고 생각 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덤덤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어지간히도 한이 맺혔나 보다. 또 일주일이 흘렀다.
토요일. 어떤 얼굴로 봐야 할까. 고민하며 교회에 도착했다. 하아. 오늘도 세컨이구나... ‘음?’ =오늘 언니 아파서 반주 못할 거 같아. 오늘 반주는 너한테 부탁할게= 문자를 받자마자 두근거렸다.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기대가 되었다. 내 목소리를 주님이 들어주신걸까? 아닌가 보다. 막상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니 전도사님이 방석을 원으로 깔으라고 하셨다. 오늘도 물건너 갔다. 언니도 없고 드럼하는 애도 아프고 일렉은 기타를 학교에 놓고왔다. 좀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이제는 마음을 놓았다. ‘그냥 참고 기다리자. 어차피 갈 사람가면 내가 하겠지. 더 기다리자.’ 그리고 나는 지난번 엄마가 말한 ‘거룩한 욕심’을 생각했다. 그리고 희망을 품기로 했다. 10년을 꿈꿨는데 몇 개월 못 기다릴 것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음은 아프지만 무거운 짐이 내려놓아진 것 같았다. 앞으로 3일.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계시는 기간이다.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주님 계획하실 일을 생각한다.
임수진 - We Can Fly!
4월 2일부터 3일까지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We Can Fly캠프에 참여했다. 1학년 때는 22기 학급으로 참여를 했었는데, 1년 동안 많은 학급들이 캠프에 참여를 하고 난 뒤라서 이번에는 41기 학급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 중 이틀, 월요일과 화요일, 총 1박 2일 동안 캠프가 진행되었다. 나는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캠프를 하는 동안은 정규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한 학년이 올라간 만큼 대학과 진로에 대해 보다 성숙한 배움을 얻으리라 생각하며 캠프가 이루어지는 협동학습실로 향했다.
이번 캠프는 작년과는 다르게 최호명 선생님께서 총 책임을 맡으셨다. 최호명 선생님은 ‘겉으로는 사나워보일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매우 부드러운 남자’라며 자신을 소개하셨고,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캠프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첫인상과는 다르게 선생님께서 친절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캠프에 임할 수 있었다.
캠프가 시작되기 이틀 전 쯤, 최호명 선생님께서는 캠프를 같이 활동할 수 있게끔 같은 대학 학과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끼리 조를 구성해서 자신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학과와 대학을 정하여 ppt로 만들어 발표를 하라고 말씀 하셨었다. 나는 어문계열 쪽에 속했고, 친구들과 함께 팀장과 발표자를 정해서 각자 역할을 나눴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ppt제작과 발표자 역할이었다. 구성된 팀원들의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대학은 ‘한국외국어대학교’로 정했고, 이를 토대로 ppt를 만들어서 발표를 해야 했다.
나는 평소에 한외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지만 같은 조원 친구들과 같이 한외대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분석을 하면서 나중에는 이 대학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한외대에 대해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은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기도 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기도 하며 ppt를 제작했고, 반 친구들 앞에서 완성한 ppt자료를 발표했다.
ppt자료를 만들면서 내가 몰랐던 대학들과 전형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만약 자료를 혼자 만들었다면 다소 힘들었겠지만 친구들과 같이 각자 주어진 역할대로 임무를 수행하며 서로 도와주며 만들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활동을 통해 어색했던 친구와 친해지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더욱 뜻 깊었다.
한외대는 내가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곳은 아니었지만 이 대학에 대해 알아보며 내가 희망하고 있는 대학의 전형들에 관한 비슷한 자료들은 따로 뽑아서 참고를 하며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도 수집하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최호명 선생님께서 왜 이번 캠프 중 조별 ppt제작 활동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꿈꾸고 있던 대학과 학과는 있었지만 왜 그 대학과 학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이유로 희망하고 있었는지는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지망 대학만이 아닌 다른 대학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며 더욱 뚜렷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잘 몰랐던 전형들과 입학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대학에 관한 많은 고민들 중 일부분은 덜어낼 수 있었다.
다른 반 친구들의 말과는 다르게 2학년으로써 맞이한 We Can Fly 캠프는 배울 점들이 많았다. 한 학년 더 올라가고, 나름대로 현실적인 대학과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 시기에 We Can Fly캠프는 나에게 적절한 도움과 보탬이 돼주었다. 이 캠프를 계기로 내가 더 많은 대학들을 알아볼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하면 좋은지, 내가 희망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엔 무엇이 있는지,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전 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2학년 1학기의 캠프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지 않기 위한 계기가 되어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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