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3일 금요일

환경과 국토 개발, 균형이 중요하다 (충남사설읽기워크북09)

'양비양시론'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로 대립하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를 모두 그르다고 하는 경우 '양비론', 모두 옳다고 하는 경우 '양시론'이라고 하지요. 제시문은 '양비양시론'의 모범적인(?) 사례로 보여집니다. 물론 완전한 양비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것이, '도룡뇽 소송 사건'을 비롯해 환경 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과 단체들에 대해 '개발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끝에서는 "무차별적인 개발은 '절대' 안된다"면서 완전한 개발주의의 속내를 감추려 합니다. 비난은 앞장서 하다가 책임에서는 한 발 쏙 빼는 식이 우리나라 언론들의 일반적인 화법을 따릅니다. 그래서 '양비양시론'이란 말은 보통 부정적인 뜻으로 쓰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편을 들지 않고 온전히 공정할 수 있을까요? 결국 '양비양시론'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객관적인양 포장하는 비겁한 방법입니다.

* 도룡뇽 소송 관련 기사

도룡뇽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60602161747&section=03

천성산 도롱뇽한테 야단맞을 고속철 터널 반대운동 (조선일보)





국민일보 사설 2011.06.07
http://news.kukinews.com/opinion/view.asp?page=&sec=&arcid=0005035393&code=11171111

국토해양부가 ‘환경지상주의’적 시각을 바로잡고, 국토 개발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해 교육 교재 편찬 및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환경 보호를 내세운 일부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국토 개발 국책사업에 번번이 제동을 걸면서 막대한 국고 손실을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과 국론 분열 현상도 심화되고 있는 것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이 같은 국토부의 움직임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시민단체와 전교조, 일부 종교계 등의 ‘활약’에 힘입어 환경 보존은 선(善)이고 개발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논리횡행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국

물론 자연 보호와 환경 보존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국민 생활 개선을 위한 국토 개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아무리 청정하고 아름답게 보존한다 한들 그 자체로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개발이 반드시 환경 훼손을 불러온다고 할 수 없는데도 환경 보존을 외치며 개발을 막는 것은 ‘환경 포퓰리즘’이라 불려 마땅하다.

도롱뇽 소송사건’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던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가 그렇다. 공사가 추진될 당시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은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도롱뇽이 멸절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도롱뇽을 원고로 소송까지 제기(도롱뇽 원고는 기각)하면서 극구 반대했다. 공사가 지연되고 상당한 혈세를 허비한 뒤 2010년에 공사가 끝난 결과는 당초의 환경영향평가대로 도롱뇽 등 생태계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몸살을 앓은 끝에 겨우 완공돼 수도권 북부지역 교통난 완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도 마찬가지 경우다.

그러나 국토부가 반드시 명념해야 할 게 있다. 환경 보존 도그마에 대처한다고 해서 오로지 개발에 중점을 두는 개발 논리에 너무 함몰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난개발이나 무차별적인 개발은 절대 안 된다. 국민이 환경과 개발 사이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必讀] "피곤하죠? 이해해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미디어 읽기 세번째, 광고 비평 참고글
"피곤하죠? 이해해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원문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170812
광고비평이라기 보다는 광고를 통해 요즘 사회를 진단하는 '시평'에 가까운 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출이 얼마나 올랐느니 하는 걸 따지는 전문적인 광고 비평 보다는 이런 쪽의 글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광고는 세상을 읽는 좋은 창이 됩니다. 가장 민감하게 세상의 흐름에 반응하는 매체가 광고이기 때문이죠. 또한 광고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은연중에 세뇌시키는 강력한 매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그냥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사이 광고는 수십차례 반복되며 일정한 메시지를 각인시키니까요. 또 그래서 광고주들이 광고에 큰 돈을 지불하기도 하는 것이구요.
거창하게 갈 것 까진 없구요, 평소에, 요즘들어 인상깊었던 광고에 대해 간단하게 자신의 생각을 붙여봅시다. 왜? 또는 이것이 어떻게? 라는 질문을 품고 생각을 풀다보면, 저절로 멋진 글이 될거에요~ 다들 화이팅! ^^
(혹시, 이 포스트를 원저자께서 보신다면... 허락을 받지않고 글을 퍼온 것에 늦게 나마 양해를 구합니다. 고등학생들의 학습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락주시면 바로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즈 연재 주소 :
http://find.mk.co.kr/new/search.php?old_news=recent&pageNum=1&cat=&cat1=&media_eco=&pageSize=10&sub=all&dispFlag=OFF&page=news&s_kwd=%B0%ED%BD%C2%BF%AC&s_page=news&go_page=&ord=1&ord1=1&ord2=0&s_keyword=%B0%ED%BD%C2%BF%AC+trend&s_i_keyword=%B0%ED%BD%C2%BF%AC&s_author=&y1=1991&m1=01&d1=01&y2=2012&m2=04&d2=13&ord=1&area=ttbd




[Trend] "피곤하죠? 이해해요" 한마디면 충분하다
긍정과잉시대 피곤한 소비자 `힘내세요` 위로에 더 큰 공감
박카스·잡코리아 등 대표적



■ 광고 트렌드 / 나를 알아주는 광고
동아제약 박카스 광고
우리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오죽 사는 게 피곤했으면 한 재독 철학자의 `피로사회`라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을까. 철학적ㆍ사회학적으로 제시하는 해법은 복잡하겠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네 마음 내가 안다`는 교감과 위로, 이른바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면 피로가 어느 정도 가시기 마련이다. 광고업계도 `모두가 피로한 사회` `항상 앞을 보고만 뛰어온 사람들`의 지친 마음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긍정 과잉의 시대`에 등장했던 "당신의 꿈을 00기업이 응원한다"는 광고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 `약국에 있다` 던 피로회복제, 마음으로 들어오다

취업을 앞둔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입버릇처럼 `아무 생각없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던 고3 수험생 시절이 차라리 그립다`고 말한다. 종종 남성 직장인들은 시간만 보내면 어떻게든 끝이 보였던 군대시절이 업무에 치이고 상사에게 시달리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직장생활보다 나았다고 회고한다. 모두가 한숨 섞인 푸념을 하는 이 모든 상황을 광고에 고스란히 담았다. 제일기획이 만들어 최근 `대박`을 치고 있는 동아제약 박카스 광고다.

`대한민국에서 000으로 산다는 것`을 카피로 내세운 이번 박카스 광고는 과거 다소 익살스러운 면을 강조했던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의 후속 시리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회사원을 부러워하고 있고, 회사원은 군생활 중인 이등병을 부러워하고, 군대 생활을 시작한 이등병은 누워서 TV를 볼 수 있는 청년 실업자를 부러워하고 있다. 이 광고를 보는 회사원, 이등병, 청년실업자들은 `어떻게 내 마음을 저렇게 알았지?` 하며 자연스레 닫힌 마음을 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피로를 느끼는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야근 하는 직장인, 아이 키우랴 일하랴 정신없는 워킹맘, 군인, 청년 실업자 중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는 것. 즉 어떤 상황에 있든 어려움을 겪고 고민을 하고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잡코리아 광고도 마찬가지다. 광고 시청자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회사 생활의 직급별 어려움들을 재미있는 카피와 함께 비꼰다. 결재를 올릴 때마다 묵혀두는 국장에게 당신은 `국장이냐 청국장이냐`고 속시원하게 말해버린다. 또 미운 직장동료들을 회사 밖으로 날려버리기까지 한다.

이 광고를 접한 소비자들은 여러 상황 속 내 생각과 같은 광고에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삼성화재의 새로운 캠페인 `뒤`편 역시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인기모델 공유가 출연한 이 광고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뒤가 든든해야 한다는 점을 단편적으로 언급하면서 사람들 마음을 파고든다.

◆ `공감마케팅` 을 넘어서는 `아웃사이드 인` 전략
공감은 본래 광고의 기본요소이기 때문에 `공감 마케팅`이라는 용어 자체는 구문(舊文)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 단순한 공감을 넘어 소비자를 이해해주는 `나를 이해해 주는 광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 팽배해진 극심한 경쟁논리와 `긍정과잉`에 대한 피로감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제는 지치고 고단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큰 공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은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당신이 가장 피곤하다. 이해한다`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광고 전문가들은 이를 `아웃사이드 인 어프로치 (Outside-in Approach)`라고 설명한다. 이 접근은 단편적인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객의 관점에서 마음은 물론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까지 헤아려 광고를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조경식 제일기획 마케팅전략본부 본부장는 "최근 아웃사이드 인 어프로치와 같은 접근 방식을 활용한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박카스와 잡코리아 광고가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보다 브랜드가 나를 이해한다는 사실이 소비자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찌 보면 소비자들이 살기가 더 팍팍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 자원, 즉 위로를 먼저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친밀감을 확보하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트렌드와 맞물려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승연 기자]

[必讀] 누구와 함께 동행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한 신한은행 광고


미디어 읽기 세번째, 광고 비평 참고글
누구와 함께 동행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한 신한은행 광고
원문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502
'일요서울'이라는 매체에 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는 광고 비평글입니다. 여러분에겐 꽤 어려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대로된 광고비평글을 한 번 읽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그래도, 일상 속에서 가장 친숙한 매체인 '광고'에 대한 얘기라 흥미를 갖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아래의 시리즈 연재 주소에서 이 분의 다른 글을 읽어도 좋습니다~
(혹시, 이 포스트를 원저자께서 보신다면... 허락을 받지않고 글을 퍼온 것에 늦게 나마 양해를 구합니다. 고등학생들의 학습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락주시면 바로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즈 연재 주소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List.html (혹시 시리즈가 보이지 않으면 이 사이트의 검색란에 '광고비평'이라고 검색하세요.)




[김재열의 광고비평] 누구와 함께 동행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한 신한은행 광고‘스키마(schema)’ 분석 없는 이미지로‘따뜻한 동행’ 어떻게 기대하나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IMI 대표  | 




신한은행은 최근 가수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을 작곡가 김형석이 편곡하고 음악감독 박칼린이 노래를 하는 광고를 하고 있다. 이번 프리론칭(Pre-Launching)광고에 이어 방영될 본 광고에서는 열심히 사는 이웃들과 중소기업의 근로자직장인 등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동행‘한다는 뜻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한다. 광고엔 고객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따뜻한 은행'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2010년 11월 동 은행이 브랜드경영을 선포하며 시작된 일련의 캠페인 광고는 박 감독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이미지를 동 은행의 이미지로 전이시켜 브랜드 이미지 연상을 용이하게 하려는 듯하다.
지난해 국내 은행의 순이익은 12조 원으로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이중 상당한 금액은 어떻게 하면 ‘돈 되는 고객’과 ‘돈 안 되는 고객’과의 구분을 통한 이른바 ‘디마케팅(Demarketing)’에 얻어진 수익이란 지적이다. 디마케팅은 1년에 1000원의 수익도 안겨주지 않은 고객을 비롯하여 공과금만 납부하며 은행과 아무런 거래가 없는 비(非)고객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고객 한 사람이 1년간 창구를 몇 번 이용하여 자사에 이익을 주는지 등 고객 1인 당 손익을 정확히 분석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수익에 덜 기여하는 고객은 창구보다는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등 우량 고객 유치 중심의 마케팅 전략이다.
▲ 신한은행 '동행' 인쇄 광고

이러한 영업 활동의 대표적인 것이 거액의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자산을 특별 관리해 주는 프라이빗 뱅킹(PB : Private Banking)서비스이다. 은밀하게 영업을 하는 일종의 VIP 마케팅이다. 거액 예금자의 예금·주식·부동산 등을 1대 1로 종합 관리하면서 투자 상담을 병행한다. 또 특별우대 이율이나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도 준다. 은행들은 거액 예금자의 수가 전체 고객 수에 비해 미미하지만 수신고로는 이들 소수의 비중이 워낙 커서 갈수록 PB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엔 금융자산만으로 10억 원 이상의 부자들이 2010년 기준으로 14만 명이며 자산은 총 450조 원으로 추정된다. 금융회사로선 그야말로 블루오션인 것이다.
PB영업에서 신한은행은 단연 업계 선두권이다. 동 은행은 유러머니지(誌) 주관 ‘2012년 PB 시상식’에서 한국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PWM(Private Wealth Management)센터는 기존 PB와 달리 은행과 금융투자의 점포를 한 곳에 두고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동 은행이 금융권에선 처음 선보여 대도시 번화가에만 벌써 다섯 번째 점포가 문을 열었다. 동 은행의 은행장은 지난 2월 서울 한 호텔에서 수도권 중소기업ㆍ개인 고객 400여 명을 초청해 조찬을 가졌다. 거래 고객들을 직접 만나 지속적 거래관계를 요청하는 이 같은 행사는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동 은행은 10억 원 이상을 예치한 고객 자녀 60명의 맞선을 주선하는 등 수익 기여도가 높은 고객의 환심을 사는 이벤트를 펼쳐왔다.
동 은행은 2010년 말 무렵 소위 ‘신한사태’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도가 한 순간에 실추한 바 있으며 사태가 수습된 직후 나온 광고의 첫 메시지가 ‘동행'이었다. 하락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신뢰도를 높이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모든 고객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고액자산가 등과 동행하겠다는 뜻으로만 들렸다. 고객이 생각하는 것과 동 은행이 강조하는 ‘동행'이 다르다면 이 광고는 크나 큰 오류에 빠지고 있다. 또한 광고는 ‘믿음·열정·희망·용기’같은 호의적 단어로 ‘따뜻함’을 연상하는 정서 소구전략을 폈지만 디마케팅 같은 속셈은 감추면서 겉으론 ‘산타’나 되듯 하는 것도 우스웠다.
▲ 신한은행 '따뜻한 동행' TV 광고

브랜드란 ‘…을 대신할 것으로 기대 되는 것(Will Stand For)’을 뜻한다. 특정 브랜드를 떠올리는 순간 어떤 특징 이미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고객에 의해 고객의 마음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어떤 유형의 정보를 선택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심리구도를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브랜드 이미지는 결국 고객의 기억 속에 얼마나 강력한 스키마가 형성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고객은 동 은행이 ‘따뜻함’을 내세우는 대로 긍정해주는 바보가 아니다. 불과 한 두 해 전의 시끌벅적했던 경영 분쟁에 대한 기억과 디마케팅의 실체를 요즘 점점 강하게 드러내는 것과 더불어 ‘따스함’의 메시지가 고객들의 스키마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철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미지는 단시간에 구축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해야만 그 힘과 모양이 유지되는 속성이 있다. 동 은행은 이미지 광고를 조급하게 판단하는 사례가 많아 파워 브랜드 창출에 실패하고 있다. 동 은행은 최근 몇 년 사이 송일국을 비롯하여 안성기, 최경주, 유재석, 박칼린 등 무려 10여명의 모델로 그 때마다 콘셉트를 바꿔 브랜드 이미지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었다.
동 은행은 음악감독의 힘을 빌려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려 한다. 소통이란 직접적인 언어나 행동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그 아우라 안에 공존한 채 서로를 바라보는 데서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함께 느끼고 그 영역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소통이 아니겠는가. 동 은행이 가지고 있는 욕망, 아티스트가 가지고 있는 욕망, 그리고 고객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일치하는 순간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지게 된다. 동 은행은 수익이라는 같은 목적만을 향해 가는 우량고객만이 아니라 서로 마주볼 수 있는 서민 고객들도 소중히 해야 한다. 월가의 시위(Occupy wall street)는 최고 부자 1%에 대한 99%의 저항이었다. 럭셔리한 공간 속 은밀한 PB 성과를 자랑하면서 한편에선 마치 모든 사람과 ‘따뜻한 동행’을 하는 것처럼 말 한다면 뉴미디어 시대의 스나이퍼(Sniper : 저격수)들에게 트집 잡히기 십상이다. 금융기업 이미지 관리가 더욱 정교해져야 할 이유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서윤경 - ONEPIECE? ONEPEACE!




 원피스는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이고, 루피와 그 동료들이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모험을 떠나는 내용이다. 1997년부터 발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많은 시간 동안 큰 인기를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탄탄한 줄거리로 흔들림 없이 전개해 나가고 있다. 만화 시장이 좋은 상황이든 아니든 원피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원피스의 정보를 찾던 중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시대적으론 15 - 17세기(대항해 시대) 쯤을 모델로 하고 있다. 단, 현대의 핵무기를 연상케 하는 고대병기 "플루톤"의 존재, 레드라인, 그랜드라인의 형성 등으로 미루어볼 때 한차례 핵전쟁 등으로 인해 현대인류가 한 번 멸망한 뒤의 먼 미래세계일 가능성도 있다.> 위키백과
 
 원피스에 나오는 시대가 먼 미래 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도 핵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 뒤라는 것. 원피스의 등장인물인 로빈은 과거의 일을 필요 이상으로 알고 있어서 화를 입었던 인물이다. 과거의 일이 핵과 관련된 것인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핵이라면 원피스에서는 이와 같은 것은 알아서도, 있어서도 안 된다고 취급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핵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관련된 회담을 하고 있고, 규칙을 정하고 있다. 우리가 핵을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원피스는 만화를 넘어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특히 원피스의 독자층은 다른 어떤 만화 보다 성인의 비율이 높다. 그런 독자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망한다. 내가 웃으며 보는 만화가 단지 만화로만 끝날 수 있도록.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김샛별 - 10대의 허세와 병맛, 패션왕



나는 웹툰을 즐겨보지 않는다. 사실, 거의 보지 않는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거란 사실도 알고 있고,  어느 한 곳에 그렇게 빠져서 생활하기 싫어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유명하다는 웹툰을 거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웹툰이 있다.
바로 패션왕.
매주 챙겨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다.
이렇게 웹툰에 무관심한 내가 패션왕에 끌린 이유는, 바로 이 웹툰의 소재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그 주위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10대인 내가 공감하기에 적절하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10대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좋은 모습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못마땅한 불량스러운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 패션왕의 독자들은 거의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나를 관점으로 생각을해도, 청소년들의 학교생활 그리고 학교 밖 생활에서의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많다.
 어른들은 세대차이로 인해 받아들이지 못할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그래서 오히려 청소년들이 이 웹툰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 수긍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서로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부분에서 이 웹툰이 많은 호응과 관심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있는 관점은 실존인물을 패러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델 장윤주, 배정남, 이수혁, 윤혁수,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 이상봉,  가수 윤두준,  배우 류승범, 장근석,  개그우먼 안영미 등 실존인물과 거의 흡사하게 묘사하여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이 웹툰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허세와 병맛 그 자체이다.
내용은 집과 학교, 독서실을 맴돌며 살던 한 소년이 같은 반의 발랄한 여학생에게 반해, 그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되겠다는 내용의 줄거리가 전부이다.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 웹툰은 그림이 병맛이다. 그 병맛같은 그림이 포인트다.
일명 간지라고 하는 허세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 병맛같은 그림을 보며 우리들은 공감하고 소통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재와 그림에 이끌려 이 웹툰을 보게되었지만, 지금은 이 웹툰 속에서 나와 우리를 발견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게 하던 행동들을 이 웹툰을 통해 보면서, 가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허세에 가득찬 우리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 웹툰이야 말로,  진정한 병맛 웹툰이 아닐까?



(문단만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나는 웹툰을 즐겨보지 않는다. 사실, 거의 보지 않는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거란 사실도 알고 있고,  어느 한 곳에 그렇게 빠져서 생활하기 싫어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유명하다는 웹툰을 거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웹툰이 있다. 바로 패션왕. 매주 챙겨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다.

이렇게 웹툰에 무관심한 내가 패션왕에 끌린 이유는, 바로 이 웹툰의 소재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그 주위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10대인 내가 공감하기에 적절하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10대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좋은 모습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못마땅한 불량스러운 모습들이 주를 이룬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 패션왕의 독자들은 거의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 나를 관점으로 생각을해도, 청소년들의 학교생활 그리고 학교 밖 생활에서의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많다. 어른들은 세대차이로 인해 받아들이지 못할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그래서 오히려 청소년들이 이 웹툰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 수긍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서로 이해하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부분에서 이 웹툰이 많은 호응과 관심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있는 관점은 실존인물을 패러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델 장윤주, 배정남, 이수혁, 윤혁수,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 이상봉,  가수 윤두준,  배우 류승범, 장근석,  개그우먼 안영미 등 실존인물과 거의 흡사하게 묘사하여 큰 웃음을 주고 있다.

이 웹툰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허세와 병맛 그 자체이다. 내용은 집과 학교, 독서실을 맴돌며 살던 한 소년이 같은 반의 발랄한 여학생에게 반해, 그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되겠다는 내용의 줄거리가 전부이다.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 웹툰은 그림이 병맛이다. 그 병맛같은 그림이 포인트다. 일명 간지라고 하는 허세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 병맛같은 그림을 보며 우리들은 공감하고 소통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재와 그림에 이끌려 이 웹툰을 보게되었지만, 지금은 이 웹툰 속에서 나와 우리를 발견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수롭지 않게 하던 행동들을 이 웹툰을 통해 보면서, 가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허세에 가득찬 우리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 웹툰이야 말로,  진정한 병맛 웹툰이 아닐까?

양세림 - 상처를 치유해주는 이발소


요즘 네이버 웹툰에는 하일권의 새로운 연재작이 올라와 반응이 뜨겁다. 엄밀히 말하자면 새로운 웹툰은 아니다. 파란에서 연재되었던 웹툰이 완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기와 이슈가 계속 되었고 잊지못한 독자들의  많은 요청으로 네이버에서 다시 재연재가 된것이다. 이러한 웹툰이 바로 '삼봉 이발소' 다.  이 웹툰은 외모지상주의에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감동적인 웹툰이다. 아마 제목만 보고는 이야기를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삼봉이발소는 네이버에서 신규웹툰이지만 인기웹툰이다. 대부분 신규작은 사람들 관심을 끌기 힘들고 설사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독자들의 관심을 완결이 날때까지 주도하기가  어려운데 하일권의 작품들은 데뷔작부터  '3단합체 김창남', '안나라수마나라', '목욕의 신' 등 모두 완결까지 평이 좋은 인기웹툰들이다. 독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있는 하일권의 데뷔작이 바로 '삼봉 이발소'다. 연극과 영화화까지 거론될 정도이니 '정말 데뷔작이 맞나?' 싶을정도로 구성이 완벽하다. 더군다나 재미와 그 속에 담긴 풍자와 교훈까지도 완벽하다.


삼봉이발소 1화의 제목은 회색 장미다. 색이 없는 꽃은 밉다. 즉 못생긴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만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장미다. 체육시간 예쁜 외모로 인기가 많은 수진이와 주인공인 장미는 늘 출석번호로 인해 달리기를 할때면 늘 나란히 서야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비교가 되고 장미는 속으로 '이겨야하나 져줘야하나' 고민을 한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이상한 괴이한 병이 돌기 시작한다. 일명 외모 바이러스라고 일컫는 병이다. 외모에 대해 자신이 없고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걸리는 병으로 병의 정도가 깊어지게 되면 트라우마가 되고 발작도 하면서 서서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없게되는 무서운 병이다.

비록 각색된 만화를 보는거라 하지만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하리만큼 크게 존재하고 있다. 21세기 개성시대에서 외모로 불평등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까 설마 하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선 그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얼마전 한 포털사이트에 '예쁜 외모로 살면' 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수려한 미모로인해 각종 면접에선 떨어진적이 없고 심지어 대학 면접에서도 플러스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의 태도도 호의적으로 다가온다는 말이었다.

그에 덧붙여진 댓글들도 다들 비슷한 유형들이었다. 외모로 인해 시작선이 다르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삼봉 이발소에서는 이러한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하고 또 전용 가위를 이용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줌으로써 그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준다. 상처를 치유받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소중함을 깨닫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치유를 받는 과정들을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고 느끼게 된다.

삼봉이발소는 늘 다 보고 난 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한다. 그냥 단면적인 만화가 아니다. 나는 기회가 닿는대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삼봉이발소를 읽도록 권유할 것이다.

방소연 - 심리학 웹툰, 닥터 프로스트






내가 현재 즐겨보는 웹툰이 하나 있다. 수많은 웹툰 중에 왜 이것만 보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웹툰은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으로써 닥터 프로스트란 제목을 갖고 있다.


심리학.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따금씩 도서관에 가면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심리학에 관련된 책들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바랬을 것이다. ‘저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라고. 또한 최근에 떠오르는 직업 중 하나도 정신과 의사라든가 상담사가 있다. 사이코패스같은 비인간적인 행동도 심리학과 큰 관련이 있는데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현 사회에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는 분야가 심리학치료인 것이다.

이 '닥터 프로스트'란 웹툰의 주인공은 프로스트교수 이다. 처음 예고편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스트교수는 약간 성격이 냉정하다. 아니. 감정을 모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같거든요'. 뭐, 어찌됐든. 주인공 성격은 넘어가자. 이 말에 나오듯이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을 연구해서 각 사람에게 맡게 치료하는 것이 심리학 치료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의 증상을 파악해 치료법을 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내용속에 또 주인공의 문제도 나오는데 아직 연재중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인간의 정이라든가 사회의 문제 비판도 좋은 재료이지만 이런 인간 심리에 대한 내용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웹툰이었다.

임수진 - 단점을 가진 이들에게 '다정한 겨울'



이 웹툰은 ‘자라지 않는’ 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웹툰 속 주인공인 다정이는 19세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보다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민성이는 180cm의 큰 키를 가진 17세 고등학생이지만 정신연령이 낮다. 다른 것 같지만 닮은 점이 많은 두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 시즌1이 끝났고, 시즌2는 한 달 뒤부터 연재 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웹툰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한다. 특히 다정한 겨울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즐겨보는 웹툰 중 하나이다. 다정한 겨울에는 가정사와 연애사가 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편하며, 그 속엔 등장인물들에게 닥친 힘든 시간들을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지와,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같이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어 주며 보내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도 있을 법하면서도 독창적인 소재를 가지고 스토리가 전개되며, 이 웹툰을 통해 많은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지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자꾸 보고 싶게 만들어준다.


다정한 겨울을 통해서 '키가 크지 않고 정신연령이 낮다'는 단점이 될 수 있는 점들을 다루며 독자들이 그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작가가 이러한 사랑스러운 웹툰을 창작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보영 - 블랙홀 같은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나는 감히 학생의 신분으로 매주 5편의 웹툰을 챙겨 보는 간 큰 고등학생이다나를 웹툰의 세계에서 못 헤어 나오게 하는 마약 같은 웹툰들에는 쌉니다 천리마마트, 고삼이 집나갔다, 낢이 사는 이야기, 노블레스, 패션왕, 다이어터가 있다. 다섯 개 모두 각각의 개성이 있고 재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단연, ‘낢이 사는 이야기이다. 이는 나에게 있어 마약을 넘어선 블랙홀 같은 존재이다.
 
 





내가 이번에 소개할 웹툰 역시 낢이 사는 이야기이다이 웹툰은 작가인 서나래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일상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나간다.
 
 
우리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 더욱 집중이 잘되듯이 이 웹툰 역시 작가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집중 또한 잘된다. 거기다가 그림체 역시 매우 심플해서(너무 심플해서 주인공의 옷은 노란 쫄쫄이 밖에 없다!) 전혀 거부 반응 없이 편히 볼 수 있다는 것도 더 집중하게 되는 요인이다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웹툰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그렸기 때문에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일을 담아내고 무한 공감을 일으킨다이런 이유에서 인지 아무리 많이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또 작가의 가족, 친구, 과거의 추억 까지도 소재로 하고 있어 마치 작가인 서나래가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잘 알던 동네 언니인 듯한 착각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친한 언니와 수다 떠는 듯한 느낌이랄까? 여기다 깨알 같은 재미까지.
 
 
이렇게 재미있는데다가 질리지 않고 읽으면 읽을수록 블랙홀 같이 빠져드는 웹툰을 어떻게 안 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블랙홀 같이 빠져드는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를강추(강력 추천)한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랜드마크 신드롬을 넘어서 (충남사설읽기워크북08)

우리 지역의 랜드마크는 무엇이라고 생각나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관한 글을 찾아 읽으면서 '부럽다'라는 생각과 함께 들었던 몇가지 생각 중 하나입니다. 또 이런 기사도 생각이 나네요...
133층 상암 랜드마크 타워 건설 무산되나 
여러가지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내용이 어려울 것 같진 않구요, 다만 '구겐하임 미술관'이니 '빌바오'니 하는 고유명사들이 생소할 것 같네요. (그래서 열심히 링크를 달았습니다... 한 번씩 꾹꾹 눌러주시길 ^^)
다시 한 번, '우리 지역의 랜드마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워크북의 마지막 질문을 그대로 이 곳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네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조물 혹은 공간을 적고, 그 이유를 서술해 봅시다."






한겨레 2011.05.27. 김정후

 구글에 영어로 ‘landmark’를 입력하면 약 9000만개, 한글로 ‘랜드마크’를 입력하면 약 1200만개의 결과가 검색된다. 한 단어에 대한 결과로는 놀라운 수치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건립된 주요 건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랜드마크라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야말로 ‘랜드마크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랜드마크(클릭)란 옛날에 탐험가가 자신이 지나간 길을 쉽게 돌아오려고 남겨 놓은 표지이다. 이 개념이 도시계획가에 의해 특정 도시와 장소를 상징하는 건조물과 공간을 일컫는 말로 진화했다. 도시는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추억과 흔적이 누적되는 장소이다. 랜드마크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도록 만들며, 도시의 정체성과 차별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한다. 사회학자 제인 제이컵스(클릭)적절한 랜드마크가 심리적 측면에서 편안한 마을과 거리를 구성하는 데 공헌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가지 더 추가하면 랜드마크는 선명한 도시 브랜딩(클릭)을 통해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언론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완공된 무슨 건물이 랜드마크로 급부상해 도시를 확 바꾸어 놓았다”는 식의 선정적(클릭) 소식이 쏟아진다. 연이어 비슷한 모습의 시각적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 몇개쯤 갖지 못한 도시는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예외적이지만 스페인의 빌바오(클릭)오스트리아의 그라츠(클릭)와 같이 무명이었던 도시가 랜드마크로 인해 단숨에 세계 관광지도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도시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랜드마크를 향한 어설픈 열정은 높이, 규모, 형태, 이름값 그리고 문화시설을 통한 랜드마크 창조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채택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 사회학자 레슬리 스클레어는 형식만 다를 뿐 오늘날에도 옛날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힘과 권력을 과시하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짓는다고 비판한다. 언론에서 성공한 랜드마크로 칭송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클릭)과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클릭)을 보자. 빌바오시와 시민 그리고 기업이 도시 재생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의하고 어떻게 비전을 수립하여 일관되게 실행했는지, 테이트 모던을 위해서 테이트재단이 어떤 전략을 수립했고 런던시는 균형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이들을 벤치마킹한다는 도시들이 살핀 적이 있는가. 이면에 담긴 노력을 애써 외면한 채 파격적 모습의 결과물이 도시를 바꾼다는 유치한 수준의 상업적 주장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랜드마크를 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증된 세계적인 대가로 하여금 비슷한 수준의 건물을 짓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랜드마크 효과’까지 복제되지 않는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과 무관하며, 급조된 빈곤한 상상력을 통한 결과물이 대가의 손을 거친다 한들 한 도시를 상징하고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랜드마크로 탄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1세기 들어서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시행된 프로젝트 중에서 현재 랜드마크로 인정받는 사례는 또한 얼마나 있나.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오늘날, 랜드마크 신드롬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것이다. 진정으로 도시를 빛낼 랜드마크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한 ‘스토리’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랜드마크 신드롬이 한순간의 유행에 머물지 않고 도시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랜드마크 효과를 낳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랜드마크를 향한 낭만적 동경이 아니라, 이성적 통찰이다.

김샛별 - 가면

 

월요일. 벌써부터 걱정되고 한숨부터 나오는 싫은 날이다. 주말에서 다시 평일로 돌아가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만하는, 내게는 그런 날이다. 언제부터인지 월요일은 내게 이런 존재가 되어버렸다.일상 중에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이 가장 기다려졌고, 월요일로가는 일요일의 밤이 아쉬움을 넘어 오히려 싫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 일까?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초등학교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 때만해도 학교가는 것, 친구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까지도 마냥 즐거웠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학원에서 밤까지 시험대비 특강을 하는 것도 그저 재미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의무가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듯이 즐겁게 하곤 했다.

그리고 나서의 중학교. 초등학교 때와는 180º 달라진 모습으로 그 때부터 나는 가면을 쓴 채 나를 위장하기 시작했다. 즐겁지 않지만 즐거운 척 연기도하고, 하기 싫어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꿋꿋하게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 후 지금, 대망의 고등학교. 지금도 역시, 나는 나를 숨긴채, 위장하며 생활하고 있다. 길고 오랜 위장으로 지금은 진짜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도 못 찾고 허둥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직까진 내 가면을 가끔씩 벗겨,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TV.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게 뭐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꾸밈없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

나는 현실에서의 진실되지 못한 의사활동을, TV를 보면서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모르게 세상과의 소통을 TV를 통해서라도 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르에 관계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예능. 아쉽게도 1월28일 이후 무한도전이 계속 파업 중이라 거짓없는 웃음과 그 속에서 사회현실을 엿보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모두 우리를 위한 파업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무한도전과 그 때의 토요일이 그리워진다.

무한도전도 생기도 없는 이 활력없는 일상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요즘은 더군다나 시험기간이다.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그래서 난 나를 더 위장하고 변장한다. 더욱 더 나를 숨기고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내보이며, 선보이고 있다. 그럴수록 금요일이 아니, 주말이 기다려진다. 진짜 나의 모습으로 지난 일주일을 되돌아보고, 숨막힌 가면을 벗는 유일한 시간. 언젠가 나는 기필고 가면을 벗을 것이다. 진짜 나, 김샛별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 그 날은 올 것이다. 꼭 와야만한다. 다시 내가 월요일을 바라면서 새로운 시작을, 일상을 즐거워하는 그 시기.

나는 다시 나의 용기와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지금도 가면을 쓴다.

나는 월요일이 싫다.......

비정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충남사설읽기워크북07)

작년 한 해를 떠들썩 하게 했던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등등 오디션 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글입니다. 떠들썩한 만큼 많은 글들이 나왔는데요, "나는 가수다"에 대한 블로그 검색 결과만도 63만개 가 넘게 나오니(클릭)  그 정도가 어땠는지 짐작이 가죠? 
그런 점에서 보면 매우 평이하고 평범한 구조의 글입니다. 오디션과 경쟁적 사회분위기를 이어 놓고 '경쟁'보다는 '진정성'을... 이라고 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비슷한 글로 <'서바이벌 예능’ 우울한 시대의 초상>(클릭) 도 읽어봅시다. 이 글과 논지는 비슷하나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른 글인데요, 어떤 글이 좀 더 와닿나요?





한겨레 2011.05.13. 김원태

<슈퍼스타케이>가 성공한 이후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유행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등 가수 대상 프로와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을 방송중이다. 한국방송은 아마추어 밴드를 대상으로 한 <톱밴드> 프로그램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고, 에스비에스는 탤런트를 대상으로 하는 <기적의 오디션>을 6월부터 방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은 신자유주의(클릭)하에서 줄세우기무한경쟁을 시키며 패자를 ‘왕따’시키는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무한경쟁은 교육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언론사에서 고교별 일류대 합격자를 발표하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대학과 학과를 상·중·하위권으로 나누어 대학 지원의 지침으로 제공하는 것도 줄세우기의 전형이다.

방송사들이 다투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것은 출연자들을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으로 줄세우기 해서 그들을 극적으로 탈락시키면서 긴장감을 높여 시청률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수>의 경우 요즈음 노래와 가창력 위주로 방송하니까 매번 탈락자들을 가리던 때보다 음악에 대한 몰입도가 커지고 시청률도 더 높아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 프로그램은 기존 가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탈락해도 가수 신분이 유지되므로 큰 타격이 되지는 않지만, <신입사원>의 경우는 사원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들과 처지가 다르다. 아나운서를 이러한 탈락 경쟁으로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얼굴임과 동시에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가 쓰는 말은 국민 언어생활의 표준이요 모범이다. 그런데 <신입사원>에서는 그런 사람보다는 재치 있는 사람, 순발력 있는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을 뽑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아나운서라기보다는 연예인이나 엠시(MC)에 더 가깝다.

상업성을 위해 억지로 서바이벌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무리도 따른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 투표나 방청객 투표가 없이 아나운서들로 이루어진 몇몇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전담하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영향력과 결정권이 가장 크다. 그들은 응시자들에게 가혹하고 비정한 질문을 퍼붓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응시자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응시자들이 당황하고 실수하고 진땀 흘리는 장면들이 불합격 사실과 함께 웃음거리로 공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언론권력의 횡포이며 초상권(클릭) 침해명예훼손, 인격권(클릭) 훼손에 해당되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항이다. 또한 팀별 경쟁에서 탈락한 팀에서 재심사를 통해 다시 일부를 구제하고 나머지 응시자들을 또 탈락시키는 등 붙였다 떨어뜨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탈락자들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가혹하고 비정한 모습으로 비친다.

나날이 도가 심해져 가는 무한경쟁과 줄세우기가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반영돼 탈락자와 패배자를 비참하게 만들기보다는 연민(클릭)의 정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한다. 살벌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살인적 경쟁을 멈추고 진정성(클릭)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2012년 4월 5일 목요일

양세림 - 선



요 며칠 내내 나름대로 심각하게 친구와 갈등이 생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 혼자만의 갈등이었다. 왜냐하면 나 혼자 끙끙대고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저때문에 고민하고 생각했다는 자체를 몰랐었다. 남이 들으면 나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같다. 하지만 내 견해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때 그 언짢은 감정이 그대로다? 그렇다면 그 때 말하면 된다라는 게 내 신조다. 속된말로 '뒤끝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늘 끝은 흐지부지다. 늘 흐지부지로 결말을 보다보니 그냥 넘어가기 일쑤가 되버렸다.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낀것도 내가 상대에게 서운함을 준것도 그냥 넘어가 버리는게 되었다. 나는 이러했던 사실들을 망각한 채 지내다가 이 심각성의 정도를 얼마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 A는 나의 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처음 A를 사귀었을 때 호탕한 성격과 함께 장난끼가 많아서 서로 만나면 웃기 바빴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여태까지 '너 나 믿지?' 같은 말은 한번도 한 적 없다만 늘상 만나면 서로가 믿는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구 A가 내 걱정을 같이 고민해 줄 때에는 엄청난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 A의 도가 지나친 장난의 횟수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니까 덩달아 나도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 씁쓸한 경우가 많다. 왜인지 나 씁쓸한것만 생각해서 장난치는 A한테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갑자기 싸해질것같은 분위기를 감당 못할것같아서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도가 지나치는 장난을 받아주면 내가 A를 예전과 같이 살갑게 대하지를 못할것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와 A와의 관계가 멀어질것이고 그것은 더 감당 못할것같았다. 그래서 A에게 내 생각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매일같이 만나면 웃는 이야기밖에 안했던 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친구 A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고 핀잔아닌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A가 적잖이 당황함을 느끼고 있다는걸 난 알았다. 이후 서로 만나면 서먹한감이 없지않아 남아있다. 예전에 나의 흐지부지함의 심각함을 미리 깨달았다면, A에게 내 생각을 말했었더라면 지금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텐데… 서로에게 서운함만 각인시켜준 꼴이 되버렸다.

대학과 자살에 대한 생각 (충남사설읽기워크북06)

작년 이맘 때, 나라 전체를 슬프게 했던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쇄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한 글입니다. 하지만 그 연쇄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만 했을 뿐 실제 내용은 '인문학의 필요성'에 관한 글이라 할 수 있겠네요.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쇄 자살사건이 궁금한 친구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교수도 자살... 충격에 빠진 카이스트 전면 휴강 (SBS)
자살 또 자살, 공짜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프레시안)
"인문학을 통해 고통을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주장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인문학'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좀 알아봐야겠죠?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기엔 지금 이 자리가 충분치는 않을 것 같고요... 대강 아래의 백과사전 인용글 그리고 링크에 걸린 동영상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살펴보았으면 해요...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사회 과학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학의 분야로는 철학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
(위키백과 '인문학'(클릭) 에서)
인문학과 안내 동영상 (클릭)
지금 이 글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또 '인문학의 위기'라는 얘기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야하는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직접적으로 '돈이 되는 것', 취직이나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쫓는 요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문학과 같은 바로 돈으로 이어지지 않는 공부, 학문들은 소외되고 있는 현상을 말해요.
인문학을 소외 시키는 극한적인 경쟁이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문학과 자살을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있는 글쓴이의 생각이 이해가기도 하지요?
한편으로는 당장 경제적 불안과 경쟁 속에서 자살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 '마음 둘 곳' 정도나 얘기하는 것이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리기도 하고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이 것 저 것 알아야할 것이 많은 내용이라 다른 글에 비해 좀 더 어렵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일단 지금 현재 위치에서 생각이 드는 것, 할 수 있는 것 만큼이라도 한 번 나누어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 
 


한겨레 2011.04.15. 조성우

'영재 학교' 카이스트(클릭)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을 한데 이어 존경 받던 교수까지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정신적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지이후(知止而后) 유정(有定) 유정이후(有定而后) 능정(能靜) 능정이후(能靜而后) 능안(能安) 능안이후(能安而后) 능득(能得).' 머물 곳을 알아야 정해짐이 있고, 정해져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해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해야 생각할 수 있으며, 생각해야 얻음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머물 곳은 마음의 거처를 뜻한다. 몸이 고통스럽고 고달픈 곳에 머물러도 마음은 그에 시달리지 않고 평화롭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이고, 지혜는 고통스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뿌리이다. 마음의 거처를 현실의 변화하는 사물이나 상대적인 가치에 두게 되면, 마음의 거처는 몸의 거처와 혼잡하여 고요함과 편안함을 얻을 수 없다. 돈과 명예, 권력과 지위는 변화하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가치들에 마음이 머물게 되면 마음은 고요함과 편안함이 아니라 언제 떠날지 모르는 불안함과 놓칠 것 같은 안타까움과 조바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과 종교는 현실을 초월한 자리에 마음의 거처를 찾는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현실을 동굴에 비유하고 동굴에 갇힌 죄수에 인간의 운명을 비유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동굴이란 몸의 거처이다. 동굴의 바깥에 있는 참된 실재에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우리는 동굴에 갇힌 죄수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목표를 달성해야 성공한 인생이다, 과학 영재와 예술 천재들을 배출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자는 주장과 생각은 우리의 몸과 두뇌가 사는 동굴이다. 편협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문화의 불가피한 흐름이다. 경쟁도 좋고 강인한 목표의식과 도전정신도 좋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마음을 관리하여 정신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공부가 병행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현실의 가치에 마음이 혼잡하여 함께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고통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퇴계 이황(클릭)은 "근심 속에 즐거움(樂)이 있다"고 가르친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현실로부터 마음을 분리하여 편안함과 고요함을 유지하려는 초월의 욕구도 함께 극을 향한다.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은 고통스런 현실이 아닌 곳에서 머물 곳을 찾는 법이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이 커질수록 인문학에 대한 욕구도 함께 커진다.
<대학>(클릭)은 그 다음에 '물유본말(物有本末) 사유종시(事有終始) 지소선후(知所先後) 즉근의(則近矣)'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선후가 있어 그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는 뜻이다. 근본을 다스리지 않고 말단을 다스릴 수 없기에, 공자는 박해야 할 때 후하고 후해야 할 곳에 박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과학 영재건 예술 천재건, 학교의 존립과 교육 목적에 상관없이 무릇 인간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인문학은 배제할 수 없는 기본이어야 한다. 고통스런 경쟁과 목표를 향한 도전 정신이 카이스트에 진학한 학생들의 선택이요 학교가 내건 개혁의 방침이라면, 고통을 이기는 법도 함께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인문학의 지혜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必讀] 병맛은 네 안에 있다 - 조석의 '마음의 소리'

미디어 읽기 두번째, 만화 비평 참고글
병맛은 네 안에 있다 - 조석의 '마음의 소리'

원문 : http://www.yondo.net/news/articleView.html?idxno=2967
"연두"라는 연세대 학보사(연세춘추)의 웹진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함께 올린 "왜 변변한 웹툰 비평 매체가 없을까?"라는 글에서 일컫고 있는 것처럼, 웹상에서 전문 웹툰 비평을 찾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이 글도 충분히 비평 글쓰기의 기본은 하고 있기에 우리들의 배울 거리로 삼을 만 한 것 같습니다.
대개의 비평글들이 그렇듯이 이 글 역시 해당 웹툰을 보지 않았거나, '웹툰'이라는 장르에 친숙하지 못한 경우 이해가 안될만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또, 아무래도 대학생이 학보사 웹진에 올린 글이니 만큼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어려운 얘기들도 있구요...
하지만, 어렵다고, 모른다고 넘겨버리진 맙시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댓글을 통해 질문하세요~ 제가, 또는 다른 친구들이 답해줄 겁니다~! 하나 하나 우리의 지평을 넓혀갑시다~ ^^
(혹시, 이 포스트를 원저자께서 보신다면... 허락을 받지않고 글을 퍼온 것에 늦게 나마 양해를 구합니다. 고등학생들의 학습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락주시면 바로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즈 연재 주소 : http://www.yondo.net/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120&view_type=sm


마음의 소리

스마트폰에 깔린 웹툰 어플은 들켜도 상관없지만 <마음의 소리>덕후라는 사실만은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소녀들의 감성일까. 그래도 나는 떳떳하게 <마음의 소리>를 필두로 ‘웹툰이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마음의 소리>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병맛 웹툰 예찬론’부터 들어보시라. 당신은 연애를 왜 하는가. 색정과 욕망을 공유할 생명체를 찾는 것인가? 손으로 더듬거릴 ‘육체’와의 사랑이 연애는 아니다. 사랑이라는 로맨틱한 말로 수식 할 나만의 당신.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더듬어 헤아려줄 ‘우리’가 필요한 까닭. 그 중 하나는 내 마음껏 털어놓을 본능적인 상대가 필요해서라 단정한다. 여기서 핵심은 ‘털어놓다’와 ‘본능적이다’.

병맛 웹툰의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털어놓다’와 ‘본능적이다’ 여기에 굳이 각주를 달아야 할까. 병맛이라 욕하지만 공감하기 마련이다. 다들 박장대소는 않더라도 실소(失笑)하지 않는가. 무적핑크(웹툰작가_‘실질객관동화’)는 항상 자신의 만화에 실소도 웃음이라 꼬리를 단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을 병맛 웹툰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 첫 번째는 조석의 <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는 그림체부터 병맛이다. (아, 여기서 짚고 갈 것이 ‘병맛’은 욕이 아니다. 오히려 극찬이다!) 뚝심 있는 각진 얼굴과 비비드한 색감을 보자면 나도 몰래 조석의 마음에 홀리는 느낌이다. 조석의 미친 눈동자를 보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의 하얀 손’이란 소설을 쓰던 같은 반 오덕후 놈이 떠오른다. 캐릭터에 오묘하게 이입이 되는데, 여기서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림체가 싫다는 거부반응이다. 사실은 병맛 월드에 발 담그게 될 걸 감지하여 자기방어 하는 거다. 나는 병맛이 아니다를 말하고 싶은 것. 그러나 누구나의 마음 한 켠 악과 선이 공존하듯, 병맛은 당신 안에 있다.
병맛에 대한 두려움은 초현실적인 줄거리가 있음직하다 느끼기부터 시작한다. 외국인이 ‘마이 네임 이즈 짐’이라 하면 ‘짐 들어드리겠습니다’가 생각나고 샤워할 때마다 젖꼭지와 눈동자가 헷갈려 스스로 천진반(드래공볼 캐릭터 _눈이 세 개다)을 떠올리며 알몸으로 끅끅거리며 웃게 된다면 이미 당신은 병맛의 노예다.(소름)



▲ 494화 유쾌한씨 (2011년 2월 11일)

조석은 주로 ‘숨은그림찾기’로 반전을 준다. 사실 여기서 ‘조석니즘’을 발견할 수도 있다. 평범한 상황의 컷이 앞선다. 병맛 상황이 뒤따른다. 이러한 반전이 주는 묘미는 매번 상황 자체는 달라지니 질리는 게 쉽지 않다는 것. 게다가 이런 전개는 병맛과 현실이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평할 수 있겠다. 적어도 엽기의 길을 걸음에도 불구하고 ‘촉수물’같은 역겨움은 없다. 때론 어이없다 느끼더라도 원래부터 그의 그림체부터 어이없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반전’의 포인트는 대체로 기대이상이다. 조석이 요즘 추구하는 그의 독특한 전개방식에서 병맛 웹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별 생각없이 보자마자 ‘푸확’하고 웃을 수 있다는 거다.


▲ 555화 로드런너 (2011년 9월 15일)
한 때 슬럼프를 겪어 그림과 스토리 보다는 ‘농담’에 그치기도 했다. 중국 도마뱀 꼬리 자르 듯 가방 잡으면 가방 벗고 뛰고, 옷 잡으면 벗고 뛰고, 머리 잡으면 ...죽는다...는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했는데 그게 어언 2년 전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도 했다. ) 다행인 점은 중간의 그 슬럼프를 넘기자 만화의 짜임새가 생겼다. 신변잡기적인 소재를 다루는 웹툰의 고민 중 하나가 짜임인데, 다행히 조석은 ‘숨은그림찾기-반전’이란 그만의 짜임새를 갖추었다. 그렇다고 짜임이라는 게 ‘틀’을 말하는 건 아니다. 틀 같은 건 <마음의 소리>와 걸맞지 않다.

단, ‘병맛덕후’로서 조석에게 부탁하는 것이 있다면......

아 뭔가 너무 극찬만 한 것 같아서 일침을 쏘려고 했는데 그닥 없다. 솔직히 이 만화를 필두에 둔 것도 다 나의 이런 무한한 애정이 바탕이다. 다만 병맛을 풀어내는 ‘작가’로서의 책임은 다하시길.

[必讀] 왜 변변한 웹툰 비평 매체가 없을까?

원문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onazite&logNo=150117100459&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만화 그 중에서도 '웹툰'을 사실상 첫번째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의 고등학생들과 친숙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는 (다음에는 다를 겁니다 ^^;;) 작품을 읽는 과제를 내지 않고 대신 관련된 글 두 가지를 읽도록 합니다.
첫번째는 웹툰 자체에 대해 다룬 글입니다. 말하는 바는 웹툰 비평 매체가 없다는 것에 대한 개탄(?)이지만, 우리나라 웹툰의 특징과 역사를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어서 선택했습니다.
문체나 어휘가 만만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얘기하고 있는 소재 - 웹툰이 친숙하니 만큼 읽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어렵다고, 모른다고 넘겨버리진 맙시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댓글을 통해 질문하세요~ 제가, 또는 다른 친구들이 답해줄 겁니다~! 하나 하나 우리의 지평을 넓혀갑시다~ ^^
(혹시, 이 포스트를 원저자께서 보신다면... 허락을 받지않고 글을 퍼온 것에 늦게 나마 양해를 구합니다. 고등학생들의 학습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연락주시면 바로 글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보영 - 인상


인상


새해에 우리가 듣게 되는 여러 덕담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부자 되세요.’  우리는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하고 더 잘 보내기 위해서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나에게는 매년 듣게 되는 덕담 같지 않은 덕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웃어’라는 덕담이었다. 이 덕담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듣기 시작해 얼마 전 까지 꾸준하게 들어 온 것으로 다른 사람이 듣는 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 갈만한 말이지만 그 말을 매년 듣는 나로서는 고민이자 콤플렉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매년 그 말을 듣는 까닭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웃지 않고 무표정으로 있을 때면 화가나 보이거나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보이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그 덕담은 ‘너는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니 웃고라도 있으렴.’ 이라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인상 때문에 내가 받는 피해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 학년이 되어 친구를 사귈 때조차도 인상 때문에 친구들 눈에는 내가 불량한 학생으로 보이거나 얼굴에 짜증만 가득한 아이로 보여 친구들과 친해지기 쉽지 않았고 내 인상만 보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친해진 친구들에게서 처음에 나를 안 좋은 아이로 봤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말을 매년 듣게 된 나는 누군가 내 얼굴을 뻔히 쳐다보기만 해도 ‘나를 안 좋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피해 의식까지 생기고 말았다. 결국 나는 억지로라도 웃으려 애쓰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나의 인상 콤플렉스는 지워지지 않고 이따금 수면에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국어시간에 나는 지난날의 그 고민들이 어린 나의 머리에서 나온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이 머라고 떠들던 나는 나고 내가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라고, 껍데기 보다는 속 안의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국어 시간에 배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구가 왜 오늘따라 ‘겉모습은 집어치워, 네 속이 중요한 거야.’ 라고 들렸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방소연 - 거룩한 욕심



요즘 무척 피곤하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온 지 1주일 까지는 쌩쌩했다. 그다음 1주일도 나름 잘 보내왔다. 감기에 걸린 것 빼고는, 4주부터인가.... 아니, 셋째 주 토요일 이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육체적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쌓이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짐을 싸고는 무척 기대에 찬 모습으로 기숙사를 나왔다. 왜 그렇게 기대에 찼냐면 셋째 주 토요일은 내가 교회 청소년부 예배 때 메인 반주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청소년부에 올라온 3년 전부터 계속 세컨 반주만 했었다. 물론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억울한 것도 맞다.

그렇기 때문에 위 선배가 졸업하고 바로 위 선배와 나만 남은 이 1년을 난 무척 기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개월간 나는 단 한번도 메인을 해 본적이 없다. 왜일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결코 언니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자만이다. 자신감이기도 하다. 실제로 실력은 별 차이 없기도 했고, 이론에 있어서는 언니들보다 내가 더 아는게 많았다. 어릴 적 부터 꿈이기도 했기에,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다. 참고 내 차례를 기다려왔다.

드디어 두려움반 기대반 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청년부와의 연합예배. 처음 반주하는 나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배가 메인을 하고 난 세컨을 하게 되었다. 예배 드리는 내내 ‘지친다...’라고,

어쩌면 별일 아닌 일이겠지만 그 후 내 마음속에 아쉬움과 억울함이 가득 남게 되었다. 일요일, 어제 일은 잊자.라고 생각하며 예배를 드렸다. 1시간이 흘러가고, 찬양대 연습에 들어갔다. 그런데 왜 그리 맘에 안드는지, 전도사님은 박자를 못 맞추시고 선배는 알아채리지도 못하고, 전도사님 질문에 답했다가 친구들한테 핀잔받고, 어제 삭힌 마음 때문인지 꼬일 때로 꼬인 내 마음이었다. 있는대로 짜증 부릴 수 없어 참고 참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나와버렸다. 엄마와 준비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 차를 타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에게 억울함을 토해내기도 했다. 난 그때 엄마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너의 꼬인 심정은 나쁘지만, 그래도 그런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니 엄만 기쁘다.’ 거룩한 욕심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게 거룩한 욕심인가? 그저 나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는데? 그 뒤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어. 모두 포기하고 신앙을 포기할까라는...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니.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이 내 욕심보다 중요할 수 없는 걸. 지금은 엄마가 이렇게 교회에서 많이 쓰임 받고 사람들이 의지하고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니였어. 네가 어렸을 때 친했던 애 기억하지? 그 애 엄마랑도 친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더라.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주변사람들이 엄마를 모함하더라고... 물론 억울했지. 교회에서 무시받고 잘 상대해 주지 않았어. 그래도 난 내가 있는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나갔지. 떠나갈 사람들은 떠나가고 남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그치? 난 네 친구엄마가 이사 갈 때도 서로 말을 하지 않았어. 나는 친구로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날 경쟁상대로 여긴 것 같더라. 그래서 그냥 덤덤하게 보내줬지.’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슬퍼졌다. 그리고 이런 엄마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분명 그 때 일은 나도 기억하고 있기에. 아마 친구가 나랑 놀지 못했을 때였을 것이다. 난 이 엄마의 경험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다시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런데 멀쩡했던 몸이 왜 그렇게 힘들게만 움직이는지, 일주일동안 그 생각만 하게 되고 생각 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덤덤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어지간히도 한이 맺혔나 보다. 또 일주일이 흘렀다.

토요일. 어떤 얼굴로 봐야 할까. 고민하며 교회에 도착했다. 하아. 오늘도 세컨이구나... ‘음?’ =오늘 언니 아파서 반주 못할 거 같아. 오늘 반주는 너한테 부탁할게= 문자를 받자마자 두근거렸다.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기대가 되었다. 내 목소리를 주님이 들어주신걸까? 아닌가 보다. 막상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니 전도사님이 방석을 원으로 깔으라고 하셨다. 오늘도 물건너 갔다. 언니도 없고 드럼하는 애도 아프고 일렉은 기타를 학교에 놓고왔다. 좀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이제는 마음을 놓았다. ‘그냥 참고 기다리자. 어차피 갈 사람가면 내가 하겠지. 더 기다리자.’ 그리고 나는 지난번 엄마가 말한 ‘거룩한 욕심’을 생각했다. 그리고 희망을 품기로 했다. 10년을 꿈꿨는데 몇 개월 못 기다릴 것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음은 아프지만 무거운 짐이 내려놓아진 것 같았다. 앞으로 3일.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무덤에 계시는 기간이다.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주님 계획하실 일을 생각한다.

임수진 - We Can Fly!



4월 2일부터 3일까지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We Can Fly캠프에 참여했다. 1학년 때는 22기 학급으로 참여를 했었는데, 1년 동안 많은 학급들이 캠프에 참여를 하고 난 뒤라서 이번에는 41기 학급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 중 이틀, 월요일과 화요일, 총 1박 2일 동안 캠프가 진행되었다. 나는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캠프를 하는 동안은 정규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한 학년이 올라간 만큼 대학과 진로에 대해 보다 성숙한 배움을 얻으리라 생각하며 캠프가 이루어지는 협동학습실로 향했다.

이번 캠프는 작년과는 다르게 최호명 선생님께서 총 책임을 맡으셨다. 최호명 선생님은 ‘겉으로는 사나워보일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매우 부드러운 남자’라며 자신을 소개하셨고,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캠프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첫인상과는 다르게 선생님께서 친절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캠프에 임할 수 있었다.

캠프가 시작되기 이틀 전 쯤, 최호명 선생님께서는 캠프를 같이 활동할 수 있게끔 같은 대학 학과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끼리 조를 구성해서 자신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학과와 대학을 정하여 ppt로 만들어 발표를 하라고 말씀 하셨었다. 나는 어문계열 쪽에 속했고, 친구들과 함께 팀장과 발표자를 정해서 각자 역할을 나눴다. 여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ppt제작과 발표자 역할이었다. 구성된 팀원들의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대학은 ‘한국외국어대학교’로 정했고, 이를 토대로 ppt를 만들어서 발표를 해야 했다.

나는 평소에 한외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지만 같은 조원 친구들과 같이 한외대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분석을 하면서 나중에는 이 대학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한외대에 대해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은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기도 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기도 하며 ppt를 제작했고, 반 친구들 앞에서 완성한 ppt자료를 발표했다.

ppt자료를 만들면서 내가 몰랐던 대학들과 전형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만약 자료를 혼자 만들었다면 다소 힘들었겠지만 친구들과 같이 각자 주어진 역할대로 임무를 수행하며 서로 도와주며 만들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활동을 통해 어색했던 친구와 친해지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더욱 뜻 깊었다.

한외대는 내가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곳은 아니었지만 이 대학에 대해 알아보며 내가 희망하고 있는 대학의 전형들에 관한 비슷한 자료들은 따로 뽑아서 참고를 하며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도 수집하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최호명 선생님께서 왜 이번 캠프 중 조별 ppt제작 활동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꿈꾸고 있던 대학과 학과는 있었지만 왜 그 대학과 학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이유로 희망하고 있었는지는 사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지망 대학만이 아닌 다른 대학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며 더욱 뚜렷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잘 몰랐던 전형들과 입학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대학에 관한 많은 고민들 중 일부분은 덜어낼 수 있었다.

다른 반 친구들의 말과는 다르게 2학년으로써 맞이한 We Can Fly 캠프는 배울 점들이 많았다. 한 학년 더 올라가고, 나름대로 현실적인 대학과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 시기에 We Can Fly캠프는 나에게 적절한 도움과 보탬이 돼주었다. 이 캠프를 계기로 내가 더 많은 대학들을 알아볼 때 어떤 방법을 활용하면 좋은지, 내가 희망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들엔 무엇이 있는지,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지를 전 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2학년 1학기의 캠프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지 않기 위한 계기가 되어 준 시간이었다.

2012년 4월 2일 월요일

외규장각 도서 '대여'가 아쉬운 이유 (충남사설읽기워크북05)


'문화재 반환(click)'이라는 이슈에 대한 글입니다. 단순하게만 보자면 이런 '나쁜 놈들! 훔쳐간 것을 제 것인양 하다니'라며 분개 할 일이지만, 어느 것이나 그렇듯이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 특히나,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앉은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는요.

'의궤'와 관련 된 상식은 당연히 채워야겠지요?



이런 글도 읽어보면 조금 더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탈문화재, 우리도 자유롭지 않다" 오타니컬렉션반환추진위, 한국 소유 해외문화재 반환 시동(click)


여러분의 워크북에서는 '어떻게 하면 의궤와 같은 해외 반출 문화재를 환수 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여기서는 조금 다른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아주었으면 좋겠네요 ^^;)

  • '문화재'는 과연 누구의 '소유'라고 해야할까요? - '의궤' 같은 경우는 좀 단순한 편이지만, 지금은 중국 땅인 만주에 있는 고구려의 유물 같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혹은 마야문명의 유물과 같은 멸망하여 후손이 남지 않은 이들의 문화재는 누구의 것이 되는 것이 맞는 걸까요?





외규장각 도서 '대여'가 아쉬운 이유
한겨레 2011.04.14.
어제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1차분 75권이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조선왕실의궤(의궤) 340권을 약탈해 간 지 145년 만이다. 조상의 삶과 얼이 새겨진 문화유산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데 참으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번 외규장각 도서의 귀국을 그저 반길 수만은 없다. 우선 외규장각 도서는 반환이 아니라 ‘5년 대여라 아쉬움이 크다. 한국-프랑스의 의궤 관련 합의문을 보면, 의궤는 5년 단위로 대여를 하고 이후 새롭게 대여를 갱신하게 돼 있다. 정부는 그동안 사실상의 영구대여여서 반환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해 왔는데, 합의문에는 영구대여로 해석될 만한 대목이 없다. 그럼에도 어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제적인 관례를 고려한, 한국으로의 실질적인 반환이라고 강조했다. 혹시 정부가 제 공치사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프랑스가 의궤 이외의 다른 약탈물에 대해선 반환 요구를 할 수 없도록 못박은 것도 문제다. 합의문은 의궤들의 대여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는 행위로서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로서야 이번 의궤 대여가 자신들이 외국에서 약탈한 수많은 문화재의 반환 요구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는 뜻이겠지만, 우리로선 5년 뒤의 대여 갱신이나 다른 약탈유물들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3의 기관에서 전시 목적으로 한 권이라도 대여를 요청할 경우 프랑스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제약의 소지가 있다.
정부는 돌아온 의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전시 계획과 함께 긴 안목의 영구반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의 환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 확인된 것만도 14만여점의 문화재가 이국땅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