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방소연 - 심리학 웹툰, 닥터 프로스트






내가 현재 즐겨보는 웹툰이 하나 있다. 수많은 웹툰 중에 왜 이것만 보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웹툰은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으로써 ‘닥터 프로스트’란 제목을 갖고 있다.


심리학.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따금씩 도서관에 가면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심리학에 관련된 책들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바랬을 것이다. ‘저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라고. 또한 최근에 떠오르는 직업 중 하나도 정신과 의사라든가 상담사가 있다. 사이코패스같은 비인간적인 행동도 심리학과 큰 관련이 있는데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현 사회에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는 분야가 심리학치료인 것이다.

이 '닥터 프로스트'란 웹툰의 주인공은 프로스트교수 이다. 처음 예고편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스트교수는 약간 성격이 냉정하다. 아니. 감정을 모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같거든요'. 뭐, 어찌됐든. 주인공 성격은 넘어가자. 이 말에 나오듯이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을 연구해서 각 사람에게 맡게 치료하는 것이 심리학 치료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의 증상을 파악해 치료법을 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내용속에 또 주인공의 문제도 나오는데 아직 연재중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중이다.

인간의 정이라든가 사회의 문제 비판도 좋은 재료이지만 이런 인간 심리에 대한 내용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하는 웹툰이었다.

임수진 - 단점을 가진 이들에게 '다정한 겨울'



이 웹툰은 ‘자라지 않는’ 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웹툰 속 주인공인 다정이는 19세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보다 작은 키를 가지고 있고, 민성이는 180cm의 큰 키를 가진 17세 고등학생이지만 정신연령이 낮다. 다른 것 같지만 닮은 점이 많은 두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 시즌1이 끝났고, 시즌2는 한 달 뒤부터 연재 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웹툰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한다. 특히 다정한 겨울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즐겨보는 웹툰 중 하나이다. 다정한 겨울에는 가정사와 연애사가 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편하며, 그 속엔 등장인물들에게 닥친 힘든 시간들을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지와,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같이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어 주며 보내는 시간들이 담겨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도 있을 법하면서도 독창적인 소재를 가지고 스토리가 전개되며, 이 웹툰을 통해 많은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지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자꾸 보고 싶게 만들어준다.


다정한 겨울을 통해서 '키가 크지 않고 정신연령이 낮다'는 단점이 될 수 있는 점들을 다루며 독자들이 그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작가가 이러한 사랑스러운 웹툰을 창작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보영 - 블랙홀 같은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나는 감히 학생의 신분으로 매주 5편의 웹툰을 챙겨 보는 간 큰 고등학생이다. 나를 웹툰의 세계에서 못 헤어 나오게 하는 마약 같은 웹툰들에는 ‘쌉니다 천리마마트, 고삼이 집나갔다, 낢이 사는 이야기, 노블레스, 패션왕, 다이어터’가 있다. 다섯 개 모두 각각의 개성이 있고 재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단연, ‘낢이 사는 이야기’이다. 이는 나에게 있어 마약을 넘어선 블랙홀 같은 존재이다.
 
 





내가 이번에 소개할 웹툰 역시 ‘낢이 사는 이야기’이다. 이 웹툰은 작가인 ‘서나래’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서 일상생활 속에서 겪은 소소한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나간다.
 
 
우리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 더욱 집중이 잘되듯이 이 웹툰 역시 작가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집중 또한 잘된다. 거기다가 그림체 역시 매우 심플해서(너무 심플해서 주인공의 옷은 노란 쫄쫄이 밖에 없다!) 전혀 거부 반응 없이 편히 볼 수 있다는 것도 더 집중하게 되는 요인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웹툰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그렸기 때문에 독자인 내 입장에서도 한 번쯤 있었을 법한 일을 담아내고 무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런 이유에서 인지 아무리 많이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또 작가의 가족, 친구, 과거의 추억 까지도 소재로 하고 있어 마치 작가인 ‘서나래’가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잘 알던 동네 언니인 듯한 착각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친한 언니와 수다 떠는 듯한 느낌이랄까? 여기다 깨알 같은 재미까지.
 
 
이렇게 재미있는데다가 질리지 않고 읽으면 읽을수록 블랙홀 같이 빠져드는 웹툰을 어떻게 안 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블랙홀 같이 빠져드는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를’ 강추(강력 추천)한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랜드마크 신드롬을 넘어서 (충남사설읽기워크북08)

우리 지역의 랜드마크는 무엇이라고 생각나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관한 글을 찾아 읽으면서 '부럽다'라는 생각과 함께 들었던 몇가지 생각 중 하나입니다. 또 이런 기사도 생각이 나네요...
133층 상암 랜드마크 타워 건설 무산되나 
여러가지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내용이 어려울 것 같진 않구요, 다만 '구겐하임 미술관'이니 '빌바오'니 하는 고유명사들이 생소할 것 같네요. (그래서 열심히 링크를 달았습니다... 한 번씩 꾹꾹 눌러주시길 ^^)
다시 한 번, '우리 지역의 랜드마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워크북의 마지막 질문을 그대로 이 곳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네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건조물 혹은 공간을 적고, 그 이유를 서술해 봅시다."






한겨레 2011.05.27. 김정후

 구글에 영어로 ‘landmark’를 입력하면 약 9000만개, 한글로 ‘랜드마크’를 입력하면 약 1200만개의 결과가 검색된다. 한 단어에 대한 결과로는 놀라운 수치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건립된 주요 건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랜드마크라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야말로 ‘랜드마크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랜드마크(클릭)란 옛날에 탐험가가 자신이 지나간 길을 쉽게 돌아오려고 남겨 놓은 표지이다. 이 개념이 도시계획가에 의해 특정 도시와 장소를 상징하는 건조물과 공간을 일컫는 말로 진화했다. 도시는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추억과 흔적이 누적되는 장소이다. 랜드마크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도록 만들며, 도시의 정체성과 차별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한다. 사회학자 제인 제이컵스(클릭)는 적절한 랜드마크가 심리적 측면에서 편안한 마을과 거리를 구성하는 데 공헌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가지 더 추가하면 랜드마크는 선명한 도시 브랜딩(클릭)을 통해 도시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효과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언론을 통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완공된 무슨 건물이 랜드마크로 급부상해 도시를 확 바꾸어 놓았다”는 식의 선정적(클릭) 소식이 쏟아진다. 연이어 비슷한 모습의 시각적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 몇개쯤 갖지 못한 도시는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예외적이지만 스페인의 빌바오(클릭)나 오스트리아의 그라츠(클릭)와 같이 무명이었던 도시가 랜드마크로 인해 단숨에 세계 관광지도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도시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랜드마크를 향한 어설픈 열정은 높이, 규모, 형태, 이름값 그리고 문화시설을 통한 랜드마크 창조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채택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 사회학자 레슬리 스클레어는 형식만 다를 뿐 오늘날에도 옛날의 정치·종교 지도자들이 힘과 권력을 과시하려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짓는다고 비판한다. 언론에서 성공한 랜드마크로 칭송하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클릭)과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클릭)을 보자. 빌바오시와 시민 그리고 기업이 도시 재생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치열하게 논의하고 어떻게 비전을 수립하여 일관되게 실행했는지, 테이트 모던을 위해서 테이트재단이 어떤 전략을 수립했고 런던시는 균형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이들을 벤치마킹한다는 도시들이 살핀 적이 있는가. 이면에 담긴 노력을 애써 외면한 채 파격적 모습의 결과물이 도시를 바꾼다는 유치한 수준의 상업적 주장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랜드마크를 복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증된 세계적인 대가로 하여금 비슷한 수준의 건물을 짓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랜드마크 효과’까지 복제되지 않는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과 무관하며, 급조된 빈곤한 상상력을 통한 결과물이 대가의 손을 거친다 한들 한 도시를 상징하고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랜드마크로 탄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1세기 들어서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시행된 프로젝트 중에서 현재 랜드마크로 인정받는 사례는 또한 얼마나 있나.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오늘날, 랜드마크 신드롬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것이다. 진정으로 도시를 빛낼 랜드마크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한 ‘스토리’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랜드마크 신드롬이 한순간의 유행에 머물지 않고 도시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랜드마크 효과를 낳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랜드마크를 향한 낭만적 동경이 아니라, 이성적 통찰이다.

김샛별 - 가면

 

월요일. 벌써부터 걱정되고 한숨부터 나오는 싫은 날이다. 주말에서 다시 평일로 돌아가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만하는, 내게는 그런 날이다. 언제부터인지 월요일은 내게 이런 존재가 되어버렸다.일상 중에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이 가장 기다려졌고, 월요일로가는 일요일의 밤이 아쉬움을 넘어 오히려 싫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 일까?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초등학교의 생활을 떠올려보면 즐거운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 때만해도 학교가는 것, 친구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까지도 마냥 즐거웠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학원에서 밤까지 시험대비 특강을 하는 것도 그저 재미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의무가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듯이 즐겁게 하곤 했다.

그리고 나서의 중학교. 초등학교 때와는 180º 달라진 모습으로 그 때부터 나는 가면을 쓴 채 나를 위장하기 시작했다. 즐겁지 않지만 즐거운 척 연기도하고, 하기 싫어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꿋꿋하게 그렇게 3년을 버텼다.

그 후 지금, 대망의 고등학교. 지금도 역시, 나는 나를 숨긴채, 위장하며 생활하고 있다. 길고 오랜 위장으로 지금은 진짜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도 못 찾고 허둥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직까진 내 가면을 가끔씩 벗겨,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TV.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게 뭐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꾸밈없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

나는 현실에서의 진실되지 못한 의사활동을, TV를 보면서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모르게 세상과의 소통을 TV를 통해서라도 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르에 관계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예능. 아쉽게도 1월28일 이후 무한도전이 계속 파업 중이라 거짓없는 웃음과 그 속에서 사회현실을 엿보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모두 우리를 위한 파업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무한도전과 그 때의 토요일이 그리워진다.

무한도전도 생기도 없는 이 활력없는 일상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요즘은 더군다나 시험기간이다.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그래서 난 나를 더 위장하고 변장한다. 더욱 더 나를 숨기고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내보이며, 선보이고 있다. 그럴수록 금요일이 아니, 주말이 기다려진다. 진짜 나의 모습으로 지난 일주일을 되돌아보고, 숨막힌 가면을 벗는 유일한 시간. 언젠가 나는 기필고 가면을 벗을 것이다. 진짜 나, 김샛별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 그 날은 올 것이다. 꼭 와야만한다. 다시 내가 월요일을 바라면서 새로운 시작을, 일상을 즐거워하는 그 시기.

나는 다시 나의 용기와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지금도 가면을 쓴다.

나는 월요일이 싫다.......

비정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충남사설읽기워크북07)

작년 한 해를 떠들썩 하게 했던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등등 오디션 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글입니다. 떠들썩한 만큼 많은 글들이 나왔는데요, "나는 가수다"에 대한 블로그 검색 결과만도 63만개 가 넘게 나오니(클릭)  그 정도가 어땠는지 짐작이 가죠? 
그런 점에서 보면 매우 평이하고 평범한 구조의 글입니다. 오디션과 경쟁적 사회분위기를 이어 놓고 '경쟁'보다는 '진정성'을... 이라고 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비슷한 글로 <'서바이벌 예능’ 우울한 시대의 초상>(클릭) 도 읽어봅시다. 이 글과 논지는 비슷하나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른 글인데요, 어떤 글이 좀 더 와닿나요?





한겨레 2011.05.13. 김원태

<슈퍼스타케이>가 성공한 이후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유행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등 가수 대상 프로와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을 방송중이다. 한국방송은 아마추어 밴드를 대상으로 한 <톱밴드> 프로그램의 참가 신청을 받고 있고, 에스비에스는 탤런트를 대상으로 하는 <기적의 오디션>을 6월부터 방송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은 신자유주의(클릭)하에서 줄세우기와 무한경쟁을 시키며 패자를 ‘왕따’시키는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무한경쟁은 교육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어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언론사에서 고교별 일류대 합격자를 발표하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대학과 학과를 상·중·하위권으로 나누어 대학 지원의 지침으로 제공하는 것도 줄세우기의 전형이다.

방송사들이 다투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것은 출연자들을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으로 줄세우기 해서 그들을 극적으로 탈락시키면서 긴장감을 높여 시청률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가수>의 경우 요즈음 노래와 가창력 위주로 방송하니까 매번 탈락자들을 가리던 때보다 음악에 대한 몰입도가 커지고 시청률도 더 높아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 프로그램은 기존 가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탈락해도 가수 신분이 유지되므로 큰 타격이 되지는 않지만, <신입사원>의 경우는 사원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들과 처지가 다르다. 아나운서를 이러한 탈락 경쟁으로 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나운서는 방송사의 얼굴임과 동시에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가 쓰는 말은 국민 언어생활의 표준이요 모범이다. 그런데 <신입사원>에서는 그런 사람보다는 재치 있는 사람, 순발력 있는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을 뽑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은 아나운서라기보다는 연예인이나 엠시(MC)에 더 가깝다.

상업성을 위해 억지로 서바이벌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무리도 따른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청자 투표나 방청객 투표가 없이 아나운서들로 이루어진 몇몇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전담하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영향력과 결정권이 가장 크다. 그들은 응시자들에게 가혹하고 비정한 질문을 퍼붓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응시자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응시자들이 당황하고 실수하고 진땀 흘리는 장면들이 불합격 사실과 함께 웃음거리로 공개되고 있는데, 이것은 언론권력의 횡포이며 초상권(클릭) 침해와 명예훼손, 인격권(클릭) 훼손에 해당되는 중대한 인권침해 사항이다. 또한 팀별 경쟁에서 탈락한 팀에서 재심사를 통해 다시 일부를 구제하고 나머지 응시자들을 또 탈락시키는 등 붙였다 떨어뜨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탈락자들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가혹하고 비정한 모습으로 비친다.

나날이 도가 심해져 가는 무한경쟁과 줄세우기가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반영돼 탈락자와 패배자를 비참하게 만들기보다는 연민(클릭)의 정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한다. 살벌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살인적 경쟁을 멈추고 진정성(클릭)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2012년 4월 5일 목요일

양세림 - 선



요 며칠 내내 나름대로 심각하게 친구와 갈등이 생겼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 혼자만의 갈등이었다. 왜냐하면 나 혼자 끙끙대고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저때문에 고민하고 생각했다는 자체를 몰랐었다. 남이 들으면 나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같다. 하지만 내 견해로는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때 그 언짢은 감정이 그대로다? 그렇다면 그 때 말하면 된다라는 게 내 신조다. 속된말로 '뒤끝있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생각을 계속 하다보면 늘 끝은 흐지부지다. 늘 흐지부지로 결말을 보다보니 그냥 넘어가기 일쑤가 되버렸다.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낀것도 내가 상대에게 서운함을 준것도 그냥 넘어가 버리는게 되었다. 나는 이러했던 사실들을 망각한 채 지내다가 이 심각성의 정도를 얼마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친구 A는 나의 속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다. 처음 A를 사귀었을 때 호탕한 성격과 함께 장난끼가 많아서 서로 만나면 웃기 바빴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여태까지 '너 나 믿지?' 같은 말은 한번도 한 적 없다만 늘상 만나면 서로가 믿는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친구 A가 내 걱정을 같이 고민해 줄 때에는 엄청난 의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마음이 이상했다. 친구 A의 도가 지나친 장난의 횟수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니까 덩달아 나도 웃는다 하지만 속으로 씁쓸한 경우가 많다. 왜인지 나 씁쓸한것만 생각해서 장난치는 A한테 '하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갑자기 싸해질것같은 분위기를 감당 못할것같아서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도가 지나치는 장난을 받아주면 내가 A를 예전과 같이 살갑게 대하지를 못할것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와 A와의 관계가 멀어질것이고 그것은 더 감당 못할것같았다. 그래서 A에게 내 생각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매일같이 만나면 웃는 이야기밖에 안했던 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니 친구 A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이런 이야기를 왜 이제서야 하냐고 핀잔아닌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A가 적잖이 당황함을 느끼고 있다는걸 난 알았다. 이후 서로 만나면 서먹한감이 없지않아 남아있다. 예전에 나의 흐지부지함의 심각함을 미리 깨달았다면, A에게 내 생각을 말했었더라면 지금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텐데… 서로에게 서운함만 각인시켜준 꼴이 되버렸다.